세상 이야기

국민연금으로 돌아보는 민주주의

紫紅 2025. 3. 25.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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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국민연금이 뜨거운 감자이다. 국민연금 개혁안이 통과되었는데, 사실상 본질은 "집단 착취", "폰지 사기"인 점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기성세대의 이기성"만 놓고 문제 삼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달라서 글을 끄적여 본다.

국회의원이 멍청한 걸까

 사실 국회의원들은 일을 아주 잘 하고 있다고 본다. 유튜버는 조회수 기반으로 컨텐츠를 개선하고, IT 서비스 기획자는 사용자 데이터를 보고 서비스를 개선하며, 딥마인드 알파고는 승률을 기준으로 다음 수를 결정한다. 국회의원이라고 다를까? 다수의 표를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표심을 얻는 것"이 핵심 역량이고, 그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본질적 문제는 사회체제에 있다

 국회의원이나 기성세대를 한 없이 이기적인 세대라고 바라보는 건, 조금 잘못된 거 같다. 우리 세대라고 이기적이지 않은가? 우리도 이기적이다. 아니, 인간 자체가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전제해야 하고, 이타적인 사람이 소수라고 봐야 맞다.

 국회의원이 "국민의 표심을 얻는 것"이 핵심 역량인 이상, "집단 이기주의"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어떤 회사 CEO로 5년간 고용되었는데, 주주들은 배당 이익이 커지길 원한다고 한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미래를 팔더라도 오늘 더 많은 배당을 할 수 있는 행위라면 할 것이다. 5년 후 회사의 안위는 내게 최우선으로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도 동일하다. 임기는 짧고, 수십년 후에 일어날 나비 효과는 그들의 최우선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노인을 위해 돈은 더 내시고, 출산률은 높입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거다.

 

민주주의는 만능이 아니다

 오늘 내가 이 글로 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이것이다. 민주주의에는 어둠이 있다는 것이다. "다수에 의한 소수에 대한 폭력"이다. 개인의 이기성은 사회에 부딛히며 깎여 나가지만, 집단 이기주의는 별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광기에 가까울 때가 많다. 국민연금을 제외한 몇 가지 사례만 봐도 그렇다.

  1. 대기업 노동 조합은 하청업체 노동자를 위해 시위하지 않는다.
  2. 외국인에게 각종 세금은 받지만, 복지는 제공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3. 의과 대학생은 의대 증원에 반대하지만, 다른과 통폐합에 대한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다.
  4. 국내에서도 생산 가능한 외국 상품에는 높은 세금이 붙는다.

 북한, 중국과 비교하며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우월하다"는 듯 얘기하지만, 국민연금 사태만 봐도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폰지 사기"라고 외쳐도, 받을 사람 입장에서 맞불 시위 해버리면, 국민 연금 개혁은 교착 상태가 된다. 따라서 국민 연금 개혁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해보인다.

 

간명책: 희생

 누군가가 희생해야 한다. 그것이 나이든 세대이든, 젊은 세대이든, 미래 세대이든 상관 없다. 우리 세대가 "틀딱들이 싸 놓은 똥 치우지만, 우리는 안 그럴 거야"라고 욕할지언정 희생하거나,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정책은 이제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없어져야할 때다. 우리들이 일을 더하더라도 미래를 팔지 말자"라고 정직하게 희생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 세대가 희생해주어야 한다. 근데 이걸 받아들일 세대가 있을까? 아마 이번에 개혁이 안 된다면, 우리가 늙은 세대가 되어서 미래 세대와 같은 싸움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정녕 뿌리부터 고쳐야 하는가

나는 솔직히 이 국민연금 사태를 "민주주의 체제의 약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자고 주장하는 건, 헌법부터 뜯어 고쳐야 가능한 일인데, 민주주의 때문에 사회 전체가 무너지기 전엔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듯.

그래서인지 정치인이나 언론도 "민주주의의 약점", "구조적인 문제"라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인지하고 인정해야 한다. 이 사태의 본질은 민주주의의 약점이라는 사실을.


 솔직히 국민연금 문제는 이번에 해결되지 못할 것 같다. 민주주의 사회인 만큼, 머리 수에서 밀린다. 그럼 어떻게 되냐고? 결국 낸 만큼도 못 받는 세대가 나올 거다. 22세기 교과서에는 현대사에 "국가단위 폰지사기 사건: 국민연금"이 한 자리 차지할 거다. 물론 대한민국이 그때까지 망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이지만.

 민주주의가 항상 무적이고, 무조건 선인 게 아니다. 항상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개개인이 유념해야하고, 미래 세대를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민주주의의 끝은 공멸 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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